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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이야기

11년 2월 이야기

by 主同在我 2011. 3. 4.

별 달리 바쁜 일도 없었던 것 같은데도 가만히 앉아 편지 쓸 짬을 내지 못하다가, 결국, 지난 2월 중순께 결석수술을 받고 나서야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지나간 날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역사 가운데 손에 꼽을 정도의 폭설을 맞았다는 한국의 소식이 들려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교회마다 가정마다 주님의 은총을 먼저 구해봅니다.

1. 교단 선교사 수련회

저희 교단 인니 지역 선교사 수련회가 1월 4일 - 7일까지 한남대 천사무엘 교수님 외 대전지역 두 분 목사님들을 모시고 수마트라 바탐에서 열렸습니다. 비록, 이 곳 빨로뽀에서부터 수련회 장소까지 4식구 모두가 이동하다보니 재정적 부담이 따르기는 했지만, 본 사역지 정착 후 첫 번째 열리는 수련회 참석에 의의를 두고 참석하였습니다. 사실, 본 사역지로 이동한 후 적지 않은 질문들이 있었는데, 언어훈련과정을 진행했던 자와섬의 모습과는 또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들이 저희를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금번 수련회 기간동안의 강의와 또한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님들의 경험들을 듣고 나누면서, 그리고 그 분들의 사랑을 받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 가족만이 겪는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사역 실습생들과의 만남

지난 1월 11일에는 자카르타 스띠아 본교에서 실습 나온 52명의 신학생들과 함께 교회와 사역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사역의 현장으로 나아가게 될 젊은 주의 종들을 마주하면서 이 땅의 시골 구석구석까지 말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가는 이들이 오히려 존경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왜일까요?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얼마전 이들의 사역지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어떤 학생이 묻더군요. 그 때, 자신이 어떤 질문을 했으며 내가 어떤 답으로 그에게 이야기했었는지 아직 기억하고 있느냐고 말입니다(사실, 그 학생이 처한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산길을 따라 함께 걸으면서 주고 받던 대화 가운데 듣게 된 그의 질문은 아직까지 저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또한 조언자로서 더욱 깊이 고민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3. 세례식

지난 1월과 2월에는 각각 중부와 남부 술라웨시 지역의 성례식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중부 술라웨시 루욱 방가이(Luwuk Banggai)에서 열렸던 세례식은 인상 깊었었는데, 이는 단순히 기독교인 자녀들의 유아세례에서 그치지 않고 애니미즘을 섬기던 이들의 개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와나족으로 알려진 이들은 멀리에서 이주해 온 종족인 탓에 주변 마을 사람들과 친화하지 못한 채 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 곳을 방문한 노회장과 저는 인도네시아 땅, 특별히 술라웨시에 아직도 외부인과의 접촉을 극히 꺼리며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꾸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 실제로, 이들은 외부인이 자신들의 터전에 올라와 방문하거나 말을 걸고 나면 해당 집을 불태우고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더욱 깊은 인상을 받고 놀란 것은 이렇게 배타적인 사람들에게 누군가 다가가 복음을 전했으며, 급기야는 그들의 일부가 복음을 받아들여 세례받기를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야 한 사람의 목사로 개종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집례하는 기쁨을 거저 누렸지만, 이러한 열매를 거둘 수 있기까지 복음의 일꾼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땀을 흘리며 씨를 심었었을까요? 정말이지, 먹을 것도 변변치 않은 그 시골에서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겠다는 하나의 사명으로 꾸준히 그 자리를 지키며 복음의 씨를 뿌려온 이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은혜들이었습니다.

성례식을 한번 하기 위해 때로는 20 - 28시간이 넘도록 차를 타고 가야 하고, 때로는 매일 3 - 5시간 이상씩 도보로 산을 넘기도 하고, 때로는 2시간이 넘도록 오토바이를 타고 벼랑 구릉지를 통과하기도 하면서 느꼈던 한 가지는 정말 사역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도시목회를 꿈꾸는 사역자뿐 아니라 시골 오지라도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역자가 꼭 필요하다.... 사실, 노회장과 제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가며 시골까지 들어가서 성례식을 집례했던 진짜 이유는 그 시골에 상주하는 목사 사역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독교인들도 있고 교회건물이 있는 마을도 있었습니다만 극히 소수의 교인들을 위해 상주하며 복음을 전할 목회자도 드물었을 뿐 더러, 그런 곳에 교역자를 보낼 수 있는 교단 역시 정말 드물었기 때문에 저희가 움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골까지 들어오는 목사가 없어 3년이 넘도록 성찬을 비롯한 성례식을 한번도 진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을 많이 답답하게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4. 신학교 소식

함께 협력하고 있는 GKSI 교단에서는 자카르타의 스띠아 본교 이외에 남부 술라웨시 분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빠뿌아와 수마트라, 그리고 서부 깔리만딴에는 각각 분교가 있어서 지역의 오지 사역지들을 감당하고 있는데 반하여, 남부 술라웨시는 아직 본교의 인원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인지라 시골에서 사역할 교역자 수급을 위해 개교하기로 하였고 이름은 여수룬 신학교로 정해졌습니다. 저희 부부가 교장과 교수로 그리고 이사진 역시 꾸려져서 지금은 정부로부터의 행정절차를 밟고 있으며, 건물 역시 성경고등학교 기숙사 한 편을 빌려 개축중에 있습니다. 비록, 아직 인력과 건물을 비롯한 재정문제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이 학교를 통해 신실한 사역자들이 훈련되고 배출되어, ‘어디든지 가오리다’하는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 도처에서 주의 말씀을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5. 가족 소식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자녀들은 아픈 곳 없이 잘 자라나고 있습니다. 올해로 초등학교 1학년 2학기를 맞고 있는 동재는 가끔 선생님에게서 글씨를 늦게 쓴다고 타박을 듣기도 하지만, 인도네시아 말을 익혀가는데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막내 동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보일 때가 있는데, 표현은 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에게도 문화적응의 스트레스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2004년 한국에서 수술한 적 있었던 결석이 재발하여 지난 2월 중순에 자카르타로 나가서 수술받고 돌아왔습니다. 비록, 한국과 같은 장비와 수술법은 아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수술은 잘 시술되었으며, 특별히, 선배 선교사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으로 병원비는 물론 과분한 휴식을 취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세례식 관계로 시골에 들어가 있던 중에 발병했던 까닭에 몸 관리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이와 아울러 하나님의 은혜를 몸으로 깊이 누리게 되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6.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몸 사랑을 위해

저희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함께 있는 선배 선교사님들이 많이 아프시네요.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몸이 아프게 되면 모든 사역이 중단되고 아니, 모든 사역을 당장 중단해야 할만큼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두가 건강관리에 게을러서만은 아닐테지만, 저희를 포함해서 선교사님들이 사역도 중요하지만, 자기 몸 사랑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 여수룬 신학교를 위해

비록, 성경고등학교 시설을 빌려서 개축중인지라 모든 시설이 잘 갖춰진 학교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 학교를 통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 교수, 행정인력이 필요하며 현재 진행중인 개축공사도 마무리 될 수있도록 재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이 일을 실제적으로 준비하는 저희를 포함한 이사진들의 마음이 먼저 하나님을 향한 열망으로 불타오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2011년 03월 04일

남부 술라웨시, 빨로뽀에서 지 형습, 정 선영, 동재, 동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