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5일
저녁 9시가 넘어서야 공항에 도착했다.
‘드디어 집에 왔구나!’ 라는 생각도 잠시
입국 수속하는 1시간여동안 밀려오는 후덥지근함과
무엇인지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매케한 냄새들
그리고 공항을 벗어나 집으로 오는 길가의 낯선 풍경들...
정말 여기가
지난 15년동안 살아왔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게 느껴졌다면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설마, 그 긴 세월을 보낸 곳인데...
비행기 이착륙 과정이 가장 중요하듯
선교사역에 있어서 가장 민감하고도 중요한 시기가
바로 정착과 재정착의 과정이다.
장기선교사로서의 첫 단계에서 느꼈을 충격들은
고스란히 지난 세월의 무게를 더해
안식년을 마친 선교사들에게
엄습해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7개월간 비워놓았던 집에 도착하니
며칠 전부터 청소는 해두었다고는 하나
오랜동안 사용하지 않은 변기는
거뭇거뭇 표면에 변색이 왔고
불을 다 켰는데도 집 안은 어둡고 답답한게
웬지 촌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그 느낌이 이제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교인들도
함께 사역하던 선교회 동료들도
팀사역을 함께했던 목사님도
유치원 스텝들도 모두들 그대로일텐데
이상하게도 마음의 평정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한달여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그런 마음의 상태가 겉으로 드러난 것인지
안정이 안되 보인다는 이야기를
문목사님으로부터 들었다.
그 모든 것이
오랜동안 접해보지 않았던 고국의 문화 속에서
7개월의 기간을 어리둥절 지내다가
이내 선교지로 돌아와
또 다시 재적응을 하는 과정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선지식이 없으니
“이게 왜 이러지? 예전엔 안그랬는데”,
“왜 이렇게 집중이 안되지?”
라는 물음들의 연속이었다.
적응과 더불어
이제 아이들 없이
두 부부만이 거주하게 될 공간을
재구성하기 위한 시간들이 필요했지만
그간 강단을 지켜온 문목사님도, 교인들도
너무 오랜시간을 기다려왔다는 말에
더 이상 다른 것을 요청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저
윈도우가 업데이트 되고난 후에
메모리가 모자라서 버벅대는 컴퓨터마냥
어딘지 모르게 동작이 굼뜬채로
다시 사역의 현장에서 움직여보긴 하는데
하하...
낯선 느낌은 여전하고
분당 엔진회전 수치를 나타내는 RPM 역시
아직 안정적인 수치로 내려오진 않고 있다
출국하면서 짐 보따리를 싸다보니
우체국 박스를 구입해
선편으로 부친 4박스 이외에도
기내용 가방 2, 수하물 2, 백팩 2개가 모자라서
결국 추가 수하물 23Kg짜리를 2개 더 구매해야만 했다.
왜냐고?
7개월만에 가는데
빈 손으로 갈수 없어
교회 식구들과 PIP 사역팀
그리고 이번에 총회파송으로 소속된
적도선교회에 나눌 기념품을 넣다보니 그리되었다.
들리는 소식통에 의하면
치매 진행을 늦춰주는데 효과가 있다는
치약을 꼭 갖고 가야한다는
정선영 선교사의 강력한 호소가
결국 추가 수하물 구매로 이어졌다죠, 아마...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오후
예전에 했던 산책코스로
혼자서 동네를 나갔는데 웬걸...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는가?
아이들의 마음을 강하게 해준다고
나름 서울에서 격려하고 위로했던때는 몰랐었는데
내 안에서도 아이들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사실이
적지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비어있는 아이들의 방을 보며
또 그 방의 물건들을 치우며
몸으로 느껴갔다.
때론 멍하니 앉아있기도 하고
때론 새벽에 일어나 엉엉 울기도 하고...
처음으로
아이들과 떨어져보는 부모 심정을 느껴보았다.
함께 있을때 왜 좀 더 따뜻하고 살갑게
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은 덤이었다.
헐...!
서울 게스트 하우스에서
주일새벽,
동재가 갑자기 방으로 와서
엉엉 울던것이 엊그제였는데
이젠 우리가 그러고 있다니...
내면의 놀람은 언제든 표출되기 마련인가보다.
동재는 지난주부터
한동대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기숙사로 안착해서 수강신청을 하는 등
열심히 적응하고 있는것같고
둘째 동진이는
ADHD 판정을 받은 지난 8월부터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서울에 있는 한 선교단체의 배려로
4월에 있을 중학교 과정 검정고시를 위해
나름 열심히 준비중이다.
사역은 사역대로
집 수리와 정리
정지되거나 밀려있던 행정처리들...
정말이지 며칠만이라도
연속으로 푹 좀 쉬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한 달이 벌써 지나갔다.
그치만 돌아보면
가슴이 푸근해지는 시간들이
내 기억창고에 남아있다.
처음에는 너무나 변해버린 사회상에
적지않은 문화충격도 받았던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7개월살이는
감사, 감사, 감사로 채워져 있다.
보고싶었던 부모형제들, 친구들
자주 만나진 않았지만
신뢰 하나로 신실하게 기도로 물질로 협력해주었던 후원자들
날 추운데도 기어이 시간을 내어주었던 분들
평범한 선교사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들어주셨던 분들
그리고 그간의 이야기들과 말씀을 나눌수 있도록
선뜻 강단의 기회를 주신 분들
선교사로서 그간 받기만 했었는데
대접할수 있도록 넓은 아량으로 허락하신 분들
또한 그게 가능하도록
한국에서의 활동 역시 지원해주신 분들
지친 마음을 쉬고 가라고 동해로, 또한 강원도로
시간을 내고 에너지를 내어 함께 먹고 함께 지내주신 분들
우리 부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영감이 오는대로 아끼는 마음으로 전해주신분들
그래서 우리의 정체성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하신 분들
또한
그 길고도 혹독했던 코로나 기간동안에도
묵묵히 버티어 환히 웃는 모습으로
살아계셔서 맞이해주신 분들
한국 있는동안 선교사 마음 편히 지내라고
쉴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분들
정말 지금 돌이켜보니
다양한 모양의 천사들과
함께 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선교지 나가있는동안
사랑의 정을 나누지 못했었는데
슬픔의 현장 가운데 잠시나마 함께할수 있었던 일들도 ...
생각해보니 감사가 넘쳐나네.
감사하신 주님께서
고국에 있는 분들과
또한 우리 가정을
더욱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사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년 9월 소식 (0) | 2024.09.29 |
---|---|
2024년 6월 소식 (0) | 2024.06.29 |
23년 12월 이야기 (3) | 2023.12.21 |
2023년 1분기 소식지 (0) | 2023.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