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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이야기

떠나는 이와 보내는 이

by 主同在我 2011. 8. 16.
지난 달, 교회 금식기도회때 노회장이 했던 말에 마음이 내내 편치 않았다
남부 술라웨시 지역 시골 사역자들을 위해
2011년 2차 년도에는 53명을 교단본부에 요청했는데
지원자는 10명에 그쳤다는 것......

이유를 들어보니,
남부 술라웨시 교회의 환경이 쁘락텍 나온 신학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때문이란다
무엇이 그렇게 나쁜 인상을 주었을까
생활비?
교인들의 성격?
교회가 처해있는 마을의 분위기?
생소한 음식?
기후?
글쎄.........

타지역에 비해 이슬람이 더욱 보수성향이 강한 곳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쁘락텍 월 5만 루피아 / 알룸니 월 15만 루피아 / 목사 월 30만 루피아
사실, 말도 않되는 액수인데다
이번달만 해도 벌써 4개월째 지급되지 않았지만
스띠아 사람들은 사명감 하나로 살아내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명감이 상실된 것일까.....

나이가 젊은 노회장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자책하며 기도회에 임했다
사실, 그 기도회때 자책한 것은 노회장이었지만
마음에 자책감이 들고 찔림을 받은 것은 우리 부부였다
지역에 외국인력이라고 있으면서도 실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하는것만 같은 마음도 마음이지만
그보다 우리를 더 아프게 한 것은
쁘락텍 나왔던 이들이 시골 사역지에 있는동안 내내 마음 속에 가졌을
응어리들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것이었다

1997년, 서부 깔리만딴에 견습 나와 있었을 시절,
2주만 견디면 많이 견디는 것이니 2주만 살아남으라는 A 목사님의 말씀에 오기가 생겼났던 적이 있었다
외국인도 2주 못 채웠다지?
그럼, 내가 2 주 견뎌주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살아냈다
어떤 날은 반찬이 없어 맨 밥만 지어먹고
소금이라도 있는 날은 밥에 소금 살짝 찍어먹고,
고추 있는 날은 소금과 고추로 반찬 삼아 먹고,
아직 채 크지도 않은 빠빠야 열매 잘라서 요리해 먹고,
말라리아 안 걸린다고 빠빠야 이파리 삶아서 그 국물 마시고 (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마 ^^)
부패한지 며칠 지난 멧돼지 고기, 노루, 사슴, 다람쥐, 큰 도마뱀에 뱀까지....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어진 음식은 다 먹어치웠고
밥은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매 끼 지어 먹었다

하지만, 그래도 외로운 건 외로운 거.....
3주째 접어들자 밀려드는 공허감과 상실감이란.....
그 때, 내게 생명의 물줄기가 찾아왔다
함께 견습나왔던 형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
놀라움으로 문을 열어젖힌 내 눈에 들어온건...... 형도, 동료도 아닌 정말 생명줄기 자체였다
그리고
한국말 신문 한 부, 그리고 아로나민 골드 몇 캅셀.....
정말 그 때의 그 기분이란....
하도 소식이 없어 확인차 들렀다는 형.....

사실, 그것 때문에 인도네시아로 다시 와야겠다 마음먹었었던 것인데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리고, 노회장의 자책에 그 옛적 기억이 다시 내 마음에 노크를 해왔다
2 사람이 벌써 또라자로 출발했다는 이야기에 동재엄마가 말했다
'너무 불쌍하다, 그지. 아무런 인사도, 따뜻한 격려도 못 받고 길을 벌써 떠났다니....'
신앙도 좋고, 사명감도 좋다
다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시골에서의 목회를 어찌 견뎌내겠는가
하지만.......
사명감, 신앙의 자기훈련..... 그 이면에는 또 다른 것이 필요하다
바로 친구이다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친구

그저, 들여보내놓고서는 기간 되면 나와라고 명령하는 관리자 말고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
우리가 너를 기억하고 있어
라고 말해주는 친구, 쉼터.......

아내가 내게 물었다
'여보, 전도사님들 들어가기 전에 밥 한끼 먹여서 보내면 안될까
그래도 따뜻한 밥 한끼라도 먹고 가면
덜 외로울텐데....'

노회장에게 단숨에 달려가 몇 명이 아직 투입대기중인지 묻고
작은 파티를 가지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나르싱 목사는 흔쾌히 승낙했다

우리가 이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
뭔가 대단한 일을 벌일수나 있을까.... 하하
옛적 한국땅을 밟았던 수많은 우리네 선배들은 뭐가 좋다고 그리 조선사람을 사랑한다고 그러고
그 곳에서 뼈를 묻겠다고 했을까
솔직이 아직은 그 분들이 이해되지 않고
그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정말 발가락의 때 만큼도 말이지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모를 답답함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 마음 저 깊이에 아주 미력하게나마
홀로 떨구어진 이 시골의 사역자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지어주는 친구가 되주고 싶은 욕구가
이 내 마음에 있는것 같은데
이를 어찌해야 할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려고 한다
할 수 있는 것부터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 한 손에 촛불을 들고서 찬송하며 4명의 파송 예정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선배들 >

< 세족식 집례를 앞두고 있는 노회장 나르싱 목사. GKSI 의 경우, 시골 사역자의 생활비 지원이 약한 까닭인지 목사안수를 받은 후 교단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 노회장마저도 나이가 젊다. 현재 나르싱 목사의 나이는 ?? 34 세, 빙고!! >

< 이게 왜 이렇게 찍혔을꼬..... 찍은 후 화면으로 확인했을 때는 분명 괜찮은것 같았었는데..... 쩝!! >

< 25명분 음식을 준비한 성경고등학교 교장 이부 에르나의 부엌. 근사한 저녁이 이 어둠침침하고 좁은 곳에서 거뜬히 만들어졌다니 놀랍고 신기해서 한 컷!!  저 위에 보이는 거, 석유곤로..... 옛날 분들은 아시죠 ㅋㅋ >

< 사진에 보이는 전구는 뭐냐고 ? 당연 크리스마스때 쓰는 전구지, 몇 년 전에 설치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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