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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생각하기

목회와 비즈니스

by 主同在我 2009. 8. 30.

8월 들어서는 청취력과 강의를 훈련해볼 생각으로 인근 신학교에서 두 과목에 한해서 청강을 듣고 있는 중입니다. 이슬람교를 비롯한 비교종교학과 더불어 인도네시아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원리가 된 빤짜실라라는 과목입니다. 비교종교야 학부 적부터 들었던 과목이기는 하지만 이슬람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으니, 비록 학부과정이지만 어느 정도 기대가 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빤짜실라…… , 초등학교에서는 빤짜실라 시간에 체조도 하고 그런다는데, 다행히 체조는 안하더군요. 가르치는 분은 정부 종교성에서 나온 목사님이라는데, 본인 간증(?)을 들어보니 목사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걸어오다 정부에 의해 목사의 길을 가게 된 분이더군요. 안수도 받고요.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갑자기 중국이나 북한의 교회 지도자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모든 필요한 과정을 자의든 타의든 마쳤으니 성경에 관련한 기본 지식은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냄새는 약간 좀….. ㅡㅡ;

 

아무튼, 성분이야 하나님 말고는 누가 정확히 중심을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 자신은 기독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해 긍정적이지만은 않더라고요. 한국에도 다녀왔고, 특별히 고양시에 있는 모 교회에 가서 2부로 드리는 새벽기도에 예배당을 꽉 매운 성도들로 인해 깊은 인상을 받은건 사실이지만서도 자국의 교회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더군요.

 

수업시간에 그는 자국의 목회자들에 대해 평가하기를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임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에는 쁜데따 로하니는 없고 쁜데따 비즈니스만 있다.” 영에 사로잡힌 목사, 영혼을 살리려는 목사보다는 목회자 자체를 직업으로 삼고 만족하는 이만 있더라는 소리입니다. 여기 저기에서 돈을 빌려서라도 교회를 지어놓고서는 사람을 모으는데, 복음에 불이 타서 사람을 모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빚 갚아줄 사람이 필요해 사람을 모으고 있는 목사님이 그의 눈에 보였었나 봅니다.

 

글쎄요….. 그의 이 이야기가 어찌나 마음에 콕 찔리던지요. 저 역시 목사의 한 사람으로, 또한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한 사람으로서 적지않은 생각을 하게 했던 한 마디였습니다. 정말 목사의 직임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 그 귀한 직임이 정말 길가의 돌맹이처럼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고 농담에 회자될 정도의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니 너무 서글픈 일입니다. 예전에는 맞아죽을 각오, 얼어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이 세 가지 각오를 가지고 있어도 목회가 힘들다 말들 하였건만 이제는 그런 길이 자신의 배를 채우려 길 가는 사람을 붙들어야 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누가 이런 일을 빚어냈는가? 물론,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교회 스스로가 복음의 본질을 따라 가기보다는 성공의 수단과 상징으로 자신을 빚어나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목사 스스로에게 그 잘못이 있기도 합니다. 목사가 출세의 수단, 살림의 수단으로 비추어지게 한 교회도 교회이나, 목사의 직임이 무엇인지를 피부 깊이 알지 못한 채 목사의 길을 가고자 하는 무지와 무능한 목회자도 분명 이 무거운 짐들로부터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겁니다. 거기에 그러한 교회와 목회자를 조장(?)한 외국의 선교사들도 한 몫 했겠지요.

 

영혼을 살리려는 목사, 정말 하나님의 신을 품에 안고 다니는 목사를 보지 못했다……

 

목사들이 뼈 속 깊이 되뇌어보아야 할 말이며, 또한 교회가 눈물로 가슴을 치며 곱씹어 보아야 할 짧지만 날카로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몸이 편해지면 마음에 음기가 동한다는 것처럼, 살기가 편해지면 종교는 그 빛을 잃게 되나 봅니다. 어려웠던 시절, 예수의 예 자만 꺼내도 밥 먹기 힘들던 시절, 그 때도 목회를 비즈니스로 삼고자 목사가 되려고 했던 이가 있었던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경제적인 축복은 물론 특정 종교의 기득권화가 그리 좋은 일, 복된 일일만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곳, 인도네시아는 기독교가 기득권은 아닙니다. 헌법상 종교선택의 자유를 보장받았을 뿐 기독교 선택으로 인한 이득은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손해가 있으면 있겠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 자체가 하나의 비즈니스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왜 일까요?

 

미친 자본주의, 광란의 자본 지상 제일주의가 들어오니, 아니, 인간 심리의 저 밑바닥에 있는 높임 받고 거들먹 거리고 싶은 마음이 자리를 찾다 보니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리의 길에는 점점 눈이 어두워져만 가고, 그 진리의 끝자락을 이용해 돈이 될수 있다면, 내 자신의 자존감과 명예를 높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진리를 이용하고 흉내낼 수 있는 어두운 시대가 온 것입니다. 과연 기독교의 끝자락이, 기독교의 본성이 이러한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 탐욕이 그 길을 가자고 하는 것일까요?

 

십자가의 꼭대기에서라도 인간 본연의 탐욕과 처절한 고통 가운데 싸우던 주님은 마침내 그 자신의 자유함을 이루셨다 합니다. 그것이 구원이라 말합니다. 도대체 선교사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 이 인도네시아 땅에서, 의인 한 사람을 찾기 위해 등불을 들고서 온 도성을 돌아다녔던 디오게네스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할까요……. 영혼을 살리는 목사를 보지 못했다니…….. 먹을 것에 관심이 많아 하늘을 향해 날지 않는 참새떼들을 떠나 언제나 높은 하늘을 훨훨 활공하는 그 자리로 나아갈지,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인도네시아의 목회자들도 참 서글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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