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
또라자 지역 사역자 학교 준비위원회와
회의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작년 10월 서베이를 갔었던 당시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그 열망과 간절함,
그리고 현지에서의 모든 필요는
자신들이 감당해서라도
훈련학교를 유치하겠다는 그 자신감은
도무지 찾아볼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자신감이나 열망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자세와 더불어
이들의 의식구조의 민낯을 마주하다보니
충격이 더 했던것 같다.
사실은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살아온 시간이 얼마인데 그걸 모를까....
교회에서 하는 봉사조차도 돈을 받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세미나 하나를 참석해도 도시락은 기본에
돌아가는 교통비까지 챙겨줘야 하는 것을....
그런데 이런 문화는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돈을 뿌려서라도 복음을 증거하고 싶은
선교사들로부터 생겨났을까?
어떻게든 사람 숫자를 많이 모아서
집회를 성공적으로 진행시켜야만 하는
단체들로부터 생겨났을까?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넉넉하지 못한 경제적 형편에서
자연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일까?
나도 모르겠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교회 안에
봉사와 헌신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가진 무게감이나 칼라는
한국교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 1월,
깔리만딴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GKE 교단 관계자들, 주안대학원 교수 및 선교사들과 함께
깔리만딴 선교포럼에 참석했었다.
그런데 통역을 준비하다보니 의문이 들었다.
이 교단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순교의 피 위에 세워졌다 자부하고 있었는데,
정작 현지인들의 순교, 헌신 이야기는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논찬을 통해 그 문제에 대해 질문을 했다.
혹시라도 하는 가느다란 희망을 가지고..
역시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혹시 내가 한국교회의 신앙형태를
이 땅에 이식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들은 종교의 틀 속에서 나름대로 예수 잘 믿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깨어나라,
깨어나라 외치려고 하는가?
결국,
몇 차례에 거듭된 내외부적 회의를 통해 진통이 있었고
급기야는 Dikasih hati, minta jantung
(마음을 표현했더니 심장까지도 내놓으라고 한다).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받고서도
감사함을 모른채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들의 행태를 지적하는 관용어가
회의 가운데 언급되기 시작했다.
신앙적 도전과 은혜는 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어느 것 하나도
대가를 치르고 싶어하지 않는 또라자 사람들의 반응에
현지 간사들마저도 지적한 것이다.
이 분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데
정말 믿는것인가?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을 믿고 있는것일까?
나는 선교사로서 뭘 이야기하는걸까?
“값싼 은혜” (Cheap Grace)....
한 신학자의 말이 머리속을 맴돈다.
혹시 나와 내 선배들이 외치던 것이
이들의 눈에는 값싼 은혜에 불과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또라자에서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밀어붙였던것이
이제는 독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결국, 훈련학교 지도부는 기도하면서 고민했고
8기 학교 후보지를 또라자에서 보종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2월초에 큰 선물이 도착했다.
방학을 맞은 첫째, 동재가
그래도 집이라고 인도네시아까지 왔다.
공항에선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지만,
교회 갔다가 집에 돌아올때마다 집이 가득찬것만 같아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부모된 심정이 이런 것인가....
작년 2월 초,
아이들을 한국에 놓고서 돌아오고 나서는
한동안 허전한 마음과 우울한 기분에 젖어 있었는데,
그래도 그 때 예방주사를 세게 맞아서 그런지
이번엔 아들녀석이 3주 쉬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데도
눈물은 안나오더구만 ^^
아들 오면 많이 놀아줘야지 했었는데,
정작 사역핑계대고 돌아다니다보니,
하루도 함께 여행도 못한채 벌써 보낼 시간이 되어 버렸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낯선 한국땅에 고아처럼 있는 동재를 돌보시기를 구하는 수 밖에....
이러면서 부모도 아이도 서로 서로 독립해 가나보다.
며칠 전,
우리 교회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관심이 없는것 같다는 이야기가
교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고
셀리더가 전해왔다.
왜 그런가 했더니,
예배 끝나고 나면 교인들과 이야기도 좀 하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는것도 무리는 아닐게다.
교회에 사람을 세워야겠다 생각하다보니
년초부터 매주가 바쁘다.
그간 시시비비 많았던 남녀선교회를 폐지하고
조그마한 셀그룹으로 구조를 바꾸다보니
그에 걸맞는 리더들 선출과 더불어
몇주간에 걸쳐 교육을 해야 했고,
전체 제직교육에, 찬양팀 교육, 결혼 예비반 교육에,
새로 구성된 5개 운동과 2개 팀 교육, 그리고 TEE 성경공부....
교회는 조그마한데,
웬 교육이 그렇게 많냐고?
교인들이 참석가능한 시간대를 찾다보니,
주일예배 마치고 나서였다.
서로 겹치지 않도록 하다보니
결국 매 주일 교육이 이어졌고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배 후에는 목회자를 볼수 없었던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교인 심방에는 소홀했던것이 사실이니
그런 종류의 피드백에는 할말이 없다.
그럼에도
교회에 뼈대가 점점 갖춰져 가는 느낌이 들어 감사하다.
바라기는 사람들이 교회를 올때마다
주님의 만지심을 경험하는 이들이 많아지며,
공동체 안에서 예수사랑을 경험하고 간증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며
진리를 쫒아가는 건강한 운동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언젠가 보종을 두고 떠날때가 오더라도
마음에 회한이 남아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해놓고 갈수도 없는 노릇이요,
나는 나의 춤을 추다가 가야하고,
그마저도 이 땅에 하나의 작은 점을 찍고 갈 뿐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나마 아쉬움을 덜 느끼고 싶어서 그럴게다.
어린 아이들을 향한 정선교사의 관심은
확실히 나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려면 부모들이 먼저 배워야 한다고
학부모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학비감면 시스템까지 만들어가며
열심을 내고 있다.
물론, 그런 열심들이 결실을 맺어
지난해 말 정부에서 운영허가까지 맡았지만,
이제는 또 다른 숙제들을 맞이하고 있다.
바로 교사 문제와 유치원 운영과 관련한 건이다.
지금까지 교사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해오던 단체에서
내년부터는 인도네시아보다
더 열악한 국가를 지원하고자 한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지원을 하는 이도 지원을 받는 이도
이 시점에서는 언제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있어야 하는게 맞는 이야기지만
NGO 역시도 후원을 받는 입장에 있다보니
빈곤 포르노의 유혹을 빠져 나오기는 힘들다
후원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헌금이 이왕이면 정말 의미있는 곳에
사용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도네이션을 하게 되다보니
집행하는 입장에서는
좀 더 가난하고 좀 더 어필할수 있는 현장을
제안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언젠가는 이런 때가 오리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막상 직접 듣고보니 대책이 서질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 1월부터 교사수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회성도를 투입함으로 임시적으로 대체는 했지만
재작년과 같은 안전사고 방지뿐 아니라,
기존 교사들의 피로도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여전히 정식 교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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