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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생각하기

도둑놈 심보

by 主同在我 2010. 3. 15.

집을 새로 이사했다
이전에 살던 집이 사정이 생겨
반둥에 선배 목사님 사시는 집으로....

<이 녀석이 바로 삼손..... 친해진 다음, 이 녀석 데리고 밖에 나갔다가 질질 끌려다니느라 혼났음 ㅡㅡ;>
 
여기에는 개가 세 마리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개, 동재도 동진이도 개를 무척 좋아한다
검정색 해피, 갈색 짱구, 하얀색 삼손
이 세 녀석이 얼마나 짖어대는지
감히 가까이 갈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짖어댄다
그 중에서도 삼손이라는 녀석은 진돗개인데다 덩치도 크다
더군다나 이 전에 왔던 거대한 몸집의 사냥개 종류를 한 번에 목덜미를 물어 숨통을 끊어버린 전력도 있다니
무섭지 않은가

하지만, 개 좋아하는 사람은 알거다
무서운 녀석일수록 더 관심이 가고 내 편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을ㅋㅋ
녀석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멀찌감치서 먹이도 줘 보고, 자주 얼굴도 보여주고
3일이 지났다
대개 하루밤이 지나 자기 집에서 문 열고 부시시 나오는 사람을 보면
개들은 짖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두 마리는 겨우 멀뚱 멀뚱 쳐다보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아직 허연녀석이 섭섭하게도 짖는다, 도둑이라도 보듯 말이지

4일째 되던 날 새벽,
새벽기도 차량을 기다리느라 집 대문 앞에 서 있던 때였지
아니나다를까 진돗개라고 삼손이 녀석이 짖어댄다
으르렁 대면서 대문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라는듯 계속해서 짖어댄다
별수 없지
동네사람들 다 깨우고 피해주는 건 또 내가 싫으니 별수 없다
대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야지
참, 내 신세 처량하게 느껴졌다
비록 임시거처이지만 그래도 내가 머무는 내 숙소요, 내 임시 집인데
집 대문에도 못 서 있다니.....

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많은 생각이 머리 속을 지나간다
저 녀석을 매로 때려서라도 복종을 시킬까
과연 그러면 내가 저 덩치 큰 녀석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매로 때리면 어떻게 어디를 언제 때려야 복종시켜
낑낑대며 꼬리를 흔들게 만들수 있을까
내 머리 속은 온통 저 괘씸하기 짝이 없는 개녀석들을 어떻게 다스릴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한 마음이 내 안에 이렇게 묻는다
"네가 뭔데?"
내가 뭐냐는 거다
내가 뭐길래 저 집 개들을 복종시켜야 한다고 마음 먹느냐는 거지
내가 뭐길래 저 집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반드시 반겨줘야 한다는 거냐
나??
그리고 보니, 내가 뭐지?
그렇지
나는 한 달 있다가 떠날 사람인데
이 집 주인은 아니지.... 그렇지..... 나는.... 나는.... 임시로 머무는 손님이지.....

따지고 보니, 그 개녀석들이 내게 꼬리를 흔들어야 할 의무도
복종할 의무도, 낑낑댈 의무도 그들에겐 없었다
그저 보고도 짖지 않으면 그걸로도 감사한게지
어쩌면 삼손이가 대문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라 짖어대는게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교회로 가는 차 안에서 짧게나마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새벽기도하는동안 내 뇌리에서 그 생각은 떠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가
결국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내 마음을 그 날 사로잡았다
내가 주도하고, 내가 이끌어가고, 내게 복종시켜야 하는 그 누군가가 있는가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그 누군가가 내게 있는가 말이다
이 집의 세 마리 개들도
유난히 짖어대는 삼손이도
그리고 목사님이 안 계시는동안 집에서 우리 가족을 도와주는 도우미들도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니
동재엄마도, 동재도, 동진이도.......
그 어느 누구도 내게 복종해야만 하고, 나를 도와줘야 할 의무를 가진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멍.... 하다고나 해야할까, 그 때의 그 느낌을

그런데 나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려왔었다니
뒤집어 보게 되니, 참 하나님의 은혜가 크시다
내가 뭐라고, 내가 주장할 수 있는게 도대체 무에 있다고
지금껏 그 모든 것을 누려왔나
주인도 아닌, 권리도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제공해 주셨다니

그 날 아침, 아내가 달리 보였다
부시시 머리를 하고 나온 아내지만 어찌 그리 고맙던지
아내와 함께 앉아 있다는 것 자체로 참 고맙고 마음이 벅차오고
자카르타로, 약속장소로, 가고 싶은 곳으로 태워다 주는 페르디가 고맙고
아침에 일어나 잘 걸어지지도 않는 걸음으로 아빠를 부르며 다가오는 동진이가 고맙고

개는 짖는게 당연하다
더군다나 그게 주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안 짖는것 하나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

오늘도 내 안에 마음보를 들여다본다
모든 것을 복종시키고자 하는 내 마음을
내 것으로, 내 편으로, 내게 꼬리 흔들고 낑낑대기만을 몹시도 바라는 내 심보를 말이다
그리고
그 도둑놈의 마음이 보이니
지금 일어나는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의 행동이 고마워지기 시작한다
남편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빠라는 이유 때문에, 손님이라는 이유 때문에
내게 마냥 복종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이들이
오늘도 옆에 있어주고, 내 친구가 되어주고 있으니

<검정녀석이 해피, 오른쪽 녀석이 밥을 잘 안 먹는 녀석인데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는 이름을 아무도 모르고 있으므로, 그냥 '짱구'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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