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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이야기

여기도 빨로뽀 라네요 : 렘뻬빠상 인근지역 성례식

by 主同在我 2011. 2. 26.
<바뚜 스딴둑에서 오젝타고 1시간 울퉁불퉁 길 달려오면 이 다리가 나온다. 바로 이 흔들다리를 기준으로 4륜구동도 못 들어가는 동네로 진입하는거다 ㅋㅋ 여기서부터는 스릴만점 진흙탕 벼랑길~~ >

지난 2월 8일부터 12일 토요일까지
빨로뽀 인근지역 성례식에 참석했었다
그 지난 주, 중부 술라웨시에 이어 두번째가 되다보니
이 곳 성례식 분위기도 어느정도 익숙해지네
이번엔 4군데를 방문한다고 한다

물론, 방문목적은 3년 넘게 성례식을 못하고 있었기에 성례식을 진행하는데 있었지만
사이드로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진행상황과 아울러
지역에 배치된 사역자들의 상황점검과 상담 역시 목적에 있었던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말이지

아무튼
렘뻬빠상 지역은 엄연히 빨로뽀 시에 속해있는 지역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일단, 차를 가지고 갈 수 없는 곳이니
집에서 지역 입구인 바뚜 스딴둑까지는 시외 앙꽂을 타고 이동 (약 40분)
그 곳에서 렘뻬 빠상 들어가는 오젝을 구해 타고 들어가니 (2 - 4 시간)
조그만 마을이 들어온다
붕인빠상이라는 곳이다
들어보니, 거기가 베이스 역할을 하는 곳이란다
사실 바뚜 스딴둑에서 붕인빠상까지 들어가는 길은 비가 조금 많이 왔던 날은 4시간 이상 걸리는데
우리가 갔던 날은 그 전날 비가 많이 오지 않아 그나마 길이 양호해 2시간 밖에 안 걸렸던 거란다

<베이스 캠프가 있는 붕인빠상의 모습. 잔디가 이쁘다고?? 다 소 똥이 깔린 진탕밭이다 ㅡㅡ;. 오른쪽 끝에 교회는 있지만 예배는 거의 드려지지 않은채 방치되고 있는 또라자 교회가 보인다>

훗!!
오토바이에서 내려 조그만 학교 사무실(거기가 사택 겸 그렇다네~ ㅡㅡ;) 로 들어섰더니
모두들 웃는다
어기적 거리며 한발짝 한발짝 서서히 움직이며 들어서는 내 모습이 웃기단다
웃기는.....
진흙탕 산길과 벼랑길에서 안 떨어지려고 온 몸에 긴장하고서 뒷좌석 꽉 잡고선
두 시간 동안 드드드드드.......... 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거기다 배낭까지 매보라고
그나마 길이 나은 형편이라 네 시간 안 달렸으니 다행이지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사역자들 중에는 아이 임신한채로 드드드드드......
출산한 아이 낳은채로 드드드드.......
그 날도, 채 한살 안되어 보이는 아이 데리고 온 용감한 여자 사역자가 있더라고
어떻게 왔냐고 했더니
역쉬..... 드드드드드드.......
뭐 방법이 그것 말고는 하루 왠 종일 산을 몇 개를 넘어와야 하니 쩝!!

<맨 윗 사진의 다리를 지나면, 오젝 기사들은 타이어 바람을 뺀다. 왜냐고? 이제부턴 진흙탕길과 벼랑길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이지비..... 공기가 너무 많아 미끄러지면 그야말로 끝이니까. 베테랑 오젝기사들도 넘어지더라고..... 노회장 3번, 나 1번 ㅋㅋ>

그렇게 거기에서 잠을 청했다
까끼 스리부가 (Kaki Seribu) 자주 출몰하여 새로 온 사람을 문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며 말이지 ㅡㅡ;
다행히 아침에 화장실 가는 길에서야 그 녀석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노래기같이 생겼는데 대왕마마 격이다, 근 20센티정도 되니 말이다
넷째 날에 다른 동네에서 노란색도 봤는데
정말이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녀석들이다

<화장실 가는데 나를 놀래킨 그 녀석.....>

<마지막 날, 상아로 올라가다가 만난 또 다른 종류의 까끼 스리부..... 이야기에 의하면, 이 놈들에 닿으면 많이 붓고 아프다고 한다. 그래도 감사하지.... 바울처럼 이 놈들한테 쏘이진 않았으니 ㅋㅋ>

그런데 까끼 스리부가 문제가 아니었다
수요일 아침, 세례와 성찬식을 마치고서 브리핑을 들어보니,
점심 먹고, 다섯 시간을 걸어 르완디로 
목요일엔 세시간을 걸어 마간당으로
금요일엔 다시 마간당에서 베이스인 붕인빠상으로 5시간을 걸어와야 하고
토요일엔 우리 노회장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동네가 있어서리.....
또 다시 왕복 2시간짜리 상아라는 동네를 다녀와야 
집에 갈 수 있단다..... ㅡㅡ;
엄마............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걷는게 제일 힘들다
물론, 공 가지고 운동하라는 것도 내겐 힘이 들지만
걷는게 제일 힘들다
방위 받으면서도 40킬로 산악행군한답시고 1박 2일 걷던것도 너무 힘들었었는데
나이 40에 20대 후반 사역자들과 며칠씩 산행을 하라니..... 뜨아.....
적어도 장비는 대원들중에 제일 좋았다
노란색 지오다노 비옷도 있었고
배낭에는 젖지 말라고 비닐팩으로 옷들을 다 싸 두었었고
혹시나 싶어, 붙이는 파스도 가지고 가고
여기 미냑 따원도 가지고 가고
후레시도 새로 장만해서 나만 가지고 있었다
완벽한 장비!!!
그런데 장비만 좋으면 뭐하냐고...... 사실, 이 말은 첫날 계속했던 것 같다

산을 향해 걸은지 30분이 지나자
고질적인 "덜그럭"님이 오셨다.... 과연.....
20살 대학시절에 기숙사에서 양쪽 무릎이 끊어져 나갈것처럼 아팠던 적이 있었다
얼마나 아팠던지 비명을 지르며 붙잡고서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후로는 공 찰 때 조금만 뛰어도 무릎이 덜그럭 거려 더 이상 걸을수가 없게 되기도 하는데
바로 그 녀석이 역쉬나 찾아왔다
누구는 관절에 살이 안 쪄서 그렇다고 타박하지만
난 어렸을적부터 사무엘처럼 무릎꿇고 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다고 둘러댄다
사실 100퍼센트 사실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른 다른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게 좋은것만은 아닌것 같다

암튼, 덜그럭 거리는 오른쪽 무릎을 가지고 올라가다 파스를 꺼내 탁 붙였다
좋아졌냐고?
정말 이상하고 신기한 파스였다
여전히 덜그럭 거리기만 하고 시원한 느낌도 아무것도 없는거다 ㅋㅋ
그래도 이왕 가지고 갔는데 붙이고 간다
그걸 보더니
사역자들이 부러워한다
나를 포함해 총 6명이 시골길에 동행했는데
노회장과 시찰장 30대초반, 쁘락떽들 20대 팔팔한 나이
아니, 그런데 그 친구들이 파스 붙인걸 보고는 부러워하니 내가 참 어이 없어서리.....
이게 어떻게 구한건데 함부로 주겠냐 싶어 끝나는 날까지 나 혼자 붙였다
붙여도 찜질효과나 진통효과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붙였다
심리적 위안이라고나 할까..... ㅡㅡ;

<음.... 왼쪽 무릎이 고장났었군..... 저 모습이 네쨋날에는 양쪽 무릎에 모두 파스를 붙였으니.... 불쌍해 보이긴 했겠군..... 아니야, 파스 때문에 부러워 보였을까?? >

결국, 절뚝거리며 산을 오르는게 불쌍했던지
전도사님 한 분이 가지고 있던 정글칼로 지팡이를 급조해준다
그 녀석을 의지해 결국 쉬었다 걸었다 하다보니
어느새 저녁이 다 되어서리 르완디에 도착했단다 (출발: 1시 45분 - 도착: 7시 10분)
뭐가 보여야 르완디인지 르완다인지..... 알지, 역시 시골은 너무 컴컴하다

르완디 교회 성도님 집에서 그 늦은 시간에 저녁을 차려주어 맛있게 먹고
집에서 잠을 청했다
판자로 된 집에 정부에서 주는 저렴한 쌀 푸대 자루를 펴서 만든 카페트 위에서
저마다 잠을 청한다, 무지 춥더구만
노회장.... 나르싱.....
자기 무릎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댄다, 내 다리가 지금 정말 아프구만, 쩝!!
노회장이 아프다는 이야기에 전도사님들 비상이 걸렸다
내꺼 따원 달라고 해서리 무릎에 바르고 등에 바르고 삐잣 해준다고 난리를 친다
내 다리좀 해 주지
사실, 내 배낭이 제일 무거웠는데..... 삐져가지고 있는데
나도 웃도리 벗으란다, 안마 해 준다고 ㅋㅋ

<오른쪽이 나르싱 목사, 그 옆이 이 지역 시찰장, 그리고 맨 왼쪽이 며칠동안 꾸사리 먹었던 르완디 교회 전도사.....>

<다섯 시간 진창 길 행군의 결과....... 밝은 데서 보니, 언제 물렸는지 나르싱 목사 발에 거머리가 붙어 있었다.... 하하하..... 한편으로 안쓰럽고 한편으로 얼마나 쌤통이던지 ㅋㅋㅋ. 역시, 사람은 아무것도 자신만만해하면 않되는 법인가 보다. 결국, 지혈이 안되어 내가 가지고 간 민약 따원으로 해결하니 모든게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간다. 나도 물렸었는데 그래도 빨리 발견해서 피는 않나서 다행이지 이 정도로 빨렸으면 나는 아마 빈혈로 기절했을거다>

그렇게 잠을 청하고 아침, 성례식을 하려고 하는데 느닷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교인들이 모두 장례식장 갔단다
또라자 사람들이라 장례식이 중요하다는건 알지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세례, 성찬 못 받은지가 3년이 넘어 기다렸다면서 
막상 산 넘고 진흙탕 건너 거머리 물려가면서 왔더니만 장례식 간다고 가버려 ??
노회장도 시찰장도 나도 모두들 힘이 빠져 르완디 교회 전도사님에게 물었다
교회나 좀 가보자고
아침이 되어 교회를 가 보니.....
이게 왠 창고.....
사택에는 교인이 아닌 사람이 살림차려 살고 있고, 교회에는 교인 대신 말벌들이 집을 지어 가득 있고... 어휴.....

그 때부터 쁘락떽 나온 전도사님 정신훈련이 이어졌다
언제까지 ?
금요일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면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ㅋㅋ
나도 노회장도 시찰장도 돌아가면서 계속 이야기한다
특정 성도 집에서 먹고 자는 일 그만두고 거기서 당장 나와서 사택에서 살아라 !
목회자가 먼저 교회를 아끼고 살펴야 교인도 움직인다 !
사택에서 살다가 정말 먹을게 없어 굶어 죽을것 같으면 나와라, 노회에서 책임진다 ! 등등
한 교회의 목회자가 한 가정의 종이 되어서리 있는게 너무 가슴 아프고 속 상했다
이 문제를 어찌 해결해야 할꼬.....
학교에서 밥 지어 먹고 생존하는 법을 가르치는 강의를 개설하자고 해야겠다

그렇게, 르완디 전도사 타박해 가면서 마간당 마을로 향했다 (출발: 9시 - 도착: 12시 15분)
가는 길에 똥이 너무 마려워 교회 화장실 어디 있냐고 했더니 저 아래 다리 있으니 거기서 해결하란다
돌맹이를 손에 쥐고 내려가면 참을 수 있을거라나??
절뚝거리는 다리로 지팡이를 쥐고 있는데 돌맹이는 또 무슨 손으로 쥐냐, 이넘들아
투덜거리며 다리 밑으로 가서 자리잡고 일 끝내고 올라오니.........
그 넘들이 웃으며 하는 말.....
사진 잘 나왔단다 ㅠㅠ
사진 찍을게 따로있지..... 정말 내 수준이다
별걸 다 찍어댄다, 한국산 똥이나 인니산 똥이나 품질도 모양도 제조과정도 다 같을텐데 말이지, 쩝!

<마간당 교회에 도착해서 찍은 아이들 사진..... 참~ 밝게 웃는 아이들.... 맨 오른쪽과 오른쪽에서 세번째 아이들이 다음 날 세례를 받았지롱.... 아이들의 밝은 얼굴이 교회 분위기를 잘 말해주는 듯 하다>

도착해보니......
정말 끝내준다
마간당 마을, 정말 감동이 되었다
교회 사이즈를 줄이는 대신, 그 비용으로 2급 나무를 사용해서 교회를 지었는데
반질반질하고 너무 깨끗해서
그 전날, 르완디 교회하고는 너무 대비가 된 나머지 감사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들어보니, 마간당 교회 전도사님이 일주일에 한번씩 쓸고 닦는다는군
역쉬...... 교회가 그냥 교회가 되는게 아니지비
저녁에..... 고넬료네 가족마냥,
총 4가정의 교인들 가족이 숙소로 모두 찾아왔다, 아이들과 함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든것 같은 무리들 앞에서........ 
귀한 말씀을 나누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우리 노회장님 하시는 말씀.....
"성찬식 때 쓰려고 빵을 가져와야 하는데 깜빡 잊어버리고 와서......
그래서..... 여기에 가게도 아예 없으니 살수도 없고......
그래서...... 고구마를 약간 고렝해서 그거 썰어서 하면 어떻겠느냐..." 고 묻는다 ㅠㅠ

그런데 반응이 더 재미있다
그거 너무 세게 튀기면 딱딱하니까 조금만 튀기면 잘 씹어진다고
뜨아.....
이런게 상황화로구나..... 싶었다
실전 성찬식이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걸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대신한다
하긴, 빵과 포도주도 그 분들 평소에 계속 손쉽게 구해 먹을 수 있던 음식들이었는데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먹던게 바로 고구마이고 차니까
빵과 포도주 대신 결국, 튀긴 고구마와 떼 마니스로 성찬식이 진행되었다
정말, 성찬식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장복 교수(한일장신 총장)님이 보시면 흥미있어하실텐데 ㅋㅋ

그렇게 마지막 마을을 뒤로 하고 베이스로 돌아오는데
문제는 무릎이었다
이제 오그러 들지도 않는 다리를 가지고서 다시 5시간 거리를 걸어서 돌아가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천천히 가자는 말에 젊은 전도사들이 한 마디 한다
천천히 가는 건 좋은데 자주 않 쉬었으면 좋겠단다 ㅠㅠ
네 넘들하고 나하고 체력이 같냐 ??? 하고 싶지만 참는다, 팀에 보탬이 안되고 있으니 ㅡㅡ;
등에는 배낭을 짊어지고, 손에는 막대기 짚고서 그렇게 산을 내려간다

그런데..... 1시간쯤 지났을 때였나
다리도 다리지만, 옆구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 분이다.....
2004년 수술해서 깨 버렸던 결석 님이시다
이 분이 오랫동안 결석하셔서 학교 그만둔줄 알았더니.....
다시 출석하셨다
1시간이 넘도록 한 손으로는 막대기 짚고
한 손으로는 왼쪽 옆구리를 부여잡고
그렇게 절뚝거리며 어기적 어기적 내려가는데
룰루랄라 하면서 먼저 내려가는 젊은 사역자들이 정말 얄밉더구만
배낭이라도 바꿔 매주지....
사실, 배낭 바꿔줄까 몇 번 이야기 했었는데 싫다고 했었다
내 것 맨 녀석은 얼마나 힘들겠어 하는 생각에, 어휴.....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옆구리도 무릎도 아프고 어깨는 빠질것 같고
너무 아프고 신경질이 나 있는데 머리 속에 한 가지 성경구절이 떠 올랐다
어렸을 적 엄마가 외우던 그 말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짓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며
달려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도 피곤치 않으리라....... 맞나??
그래서 하나님을 앙망하는게 뭔가 싶어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이 술라웨시 들어올 때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가서 뭐 할 수 있겠나 싶었는데 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사랑하면 그걸로 되었지 했던 그 생각........
그래서 찬양을 시작했다
한국찬양들.... 내가 평소 즐겨 부르던 찬송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조금만 구부러져도 너무 아프던 무릎이 조금씩 구부려지더니
이것봐라...... 조금 더 구부려봐도 괜찮고, 땅을 짚어도 걸을만한게 아닌가
옆구리는?? 통증도 가시고....
아싸..... 정말, 톰 행크스가 주연했던 포레스트 검프에서처럼 
다리가 점점 걸어지더니 속도가 붙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신이 나서 걷다보니 대열의 맨 앞쪽에서 걷는건지 달리는건지 걷고 있었고
그렇게 내리 걸어지다보니 너무 신기하고 말씀의 능력이 좋아
더욱 더 하나님 찬양을 하니, 
뒤에서 따라오던 시찰장은 그 노래를 인니어로 부르며
그렇게 비를 맞으며 두 시간을 목청껏 하나님 찬양하며 산을 내려오다보니 벌써..... 베이스 캠프..... 엉엉.....

하지만.....
그런 말씀의 은혜를 입었지만서도...... 베이스캠프까지 왔는데 또 다시 산행을 해야한다니.....
선뜻 내키지가 않아, 나르싱 목사에게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교인들이 나르싱 목사를 간절히 기다린다니 ㅋㅋㅋ
그런데......
절뚝거리며 나르싱도 올라가는데 나 혼자 집에서 기다린다고 할수야 있나 ㅡㅡ;
에고, 에고..... 결국 같이 올라간다
그렇게 내려왔더니 이제는 오젝이 문제다
내려가는 오젝이 없단다, 뜨아.....
이제야 임무완수하고 걷는것좀 안해도 되겠다 싶었더니 오젝이 없다니
그런데 더 기막힌 말....
노회장님 오젝은 어제 미리 구해놨단다..... 다시 한번 뜨아.......
이건 뭐.... 아무리 꼬다리로 끼어 있다고 해도 내 것도 구해조야지, 이런~~
얼마나 서운했던지.......
역시 손님은 손님일뿐인가...... 자신들 입장에서는 노회장이 더 우선순위이겠지만서도
서운한건 서운한거다
이런 기분을 알았는지, 노회장이 먼저 가는 걸 포기하고 기다렸다 오젝 두 대 잡아서 늦게서야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임무는 다 완수했는데
몸은 모..... 엉망이다
무릎관절, 발목관절..... 거기다 오젝타고 빠져나오면서 벼랑에 떨어질뻔하고.....
그렇게 토요일 내려와 주일 교회가서 나르싱 목사와 회포를 풀려했더니
결석님이 출석하셔서 결국 자카르타로 가지 모겠수, 흐이그..... 재밌는 일주일이구만~

아무튼, 이번 사역에서 또 한번 느꼈던 세 가지

1. 목회자가 변해야 교회가 산다
2. 그 시골 구석구석지에 아무 이름도 빛도 없이 묵묵히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사역자들이 오늘도 있다는 사실
3.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능력이 된다는 사실

<붕인 빠상에 도착했더니, 우리 온다고 돼지고기를 구해와서 요리 중이다 ^^ 오늘의 요리사는 쁘락떽 나온 전도사님인데 이름을 잊어버렸넹..... 쩝...... 멋있는 이국적 이름이었는데>
 
<붕인빠상 사택의 부엌 모습이다. 오른쪽 보이는 하얀색 티 입은 사역자가 한 살 채 안된 애기를 드드드드...... 오젝 태워 데리고 온 간 큰 엄마 ㅡㅡ;>

<붕인빠상에 비가 내린다. 내릴땐 무지막지하게 내리지, 여느 곳처럼 말이야....>

<베이스 캠프인 붕인빠상에서 길을 떠나기 전인 수요일 오전, 두 명의 아이에게 유아세례식이 진행되었다>

<얼마나 높았던지..... 저 아래 구름 보이나?? 증거용으로 한 컷. 허약체질인 나에게는 이것도 용하다 ^^>

<말벌이 교인이 되고, 먼지가 성령이 되어 충만해진 르완디 교회.... 그래도 그 전 주일에 청소한 거라고 한다 ㅡㅡ;>

<뒤에 보이는 집이 또라자 사람들 원래의 전통가옥이란다. 지금이야 멋있는 집들 많지만, 옛날에는 저렇게 대나무만을 사용해서 집을 지었다고 하네...... 연두색 상의 입은 사람이 내게 지팡이 만들어 준 프랭키 전도사>


<마간당 교회에서의 인상이 깊어, 밤에 후레쉬를 켜고서 말씀을 다시 준비하는 노회장 나르싱 목사>

<인도네시아에서는 결혼 증명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부부 역시, 이슬람에서 결혼식을 올렸었는데 기독교로 개종 이후 교회에서 발부한 결혼 증명서를 받지 못해, 성례식 치르는 김에 성혼식도 함께 치렀다>

< 무릎을 꿇은 아이의 아버지는 르완디 교회 교인인데, 교인들이 장례식에 모두 가 버리는 바람에 성례식이 무산되자 아이를 이 곳 마간당 교회로 데려와 세례를 받았다. 뒤에 보이는 팔짱낀 남자가 이 곳 전도사님..... 여기는 내려진 팔을 의식해서 그런지 어색하다 싶으면 모두들 팔짱을 끼고 있는데, 한국적 상황에서는 보기에 참 민망하다 ^^ >

<세례, 성찬, 성혼식을 마친 후 마간당 교인들과 함께.... 함께 간 사역자들 6명을 빼고 나면 4가정 밖에 안되는 작은 교인이지만, 정말 분위기 좋게 신앙생활하고 있는것 같아 인상이 좋았다>

<마지막 날, 붕인빠상에서 상아로 가던 길에 본 모습. 초등학교에서 우빠짜라 븐데라, 국기게양식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거 하는 것도 아니고, 그거를 위해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다. 땀 뻘뻘 흘리면서 ^^>

<상아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유치원.... 아직 공사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유치원생들은 교회 예배당으로 가고, 유치원 건물에는 닭들이 대신 온다 ^^>

<오젝을 기다리며....... 저 멀리서 빠빤 들고 나르는 일행이 보여 한컷!!! 제재소가 따로 없으니, 정글에서 전기톱으로 나무를 썰어 판자로 만들어 놓으면, 일당을 주고서 판자를 목적지까지 날라야 하는데 몇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를 일..... 사실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 누가 그런다. 산 속이라 나무가 많으니 나무 값이 당연히 쌀 것 아니냐고, 그러니 교회 짓는데도 비용이 비싸지 않을것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나무 이렇게 가져와야 한다. 본인이 평생 나를거 아니면, 돈이 들어가지 않겠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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