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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이야기

6월 이야기

by 主同在我 2009. 7. 3.

한국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더불어 정치 경제 분야 안팎의 문제로 인해 혼돈의 연속인지 모릅니다만, 이 곳 인도네시아 역시 글로벌 시대의 역풍을 피해갈 수 만은 없는 모양입니다. 지난 5월에 치뤄졌던 국회의원 선거에 이어 이번에는 7월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이 곳 역시 뒤숭숭한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특별히, 교회를 포함한 기독교 단체들에서는 이슬람 정당에서 정치에 압력을 가하지 못하도록 기독교인 정당이 대선에 승리하여야 한다며 그를 위해 운동하고 또한 기도를 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어느 곳에 있는지는 지난 역사가 말해주듯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바라고 기도하기는 정치가에 의해 기독교 자체가 부흥하기도 하고 쇄락하기도 하는 데 영향을 입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어느 경우에든지 교회가 깨어서 이 민족을 살리고 역사를 살리는 일에 매진해 가게 되기를 간절히 구할 뿐입니다.

지난 번 연락을 드린 후, 시간적으로는 2개월이 남짓 지나간 것 뿐이지만 저희들의 신상에는 적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었습니다.

 

1. 언어 훈련


    저는
6월 초 기말고사를 마지막으로 현재 방학에 들어가 있는 중입니다만, 학교측의 언어교수진행상의 문제로 인해 2학기에는 랭귀지코스에서의 학습형태 대신 일반과목 청강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내는 선교사 언어학교인 ‘임락’에서 2단계 과정이 마쳐져 7월 초에 3단계 과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9단계로 이루어진 코스를 은혜 가운데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가족을 동반한 상태에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지금까지 견뎌왔듯이 앞으로의 과정 또한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지혜가 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2. 선교사 대회 참석



    인도네시아에 입국한 이후 처음으로 현지 선교사님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지난 4 27일부터 29일까지는 통합측 선교사 대회로 모였었는데, 선배 선교사님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또한 서정운 전 장신대총장님이 오셔서 말씀을 나눠주셔서 힘을 얻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6 2일부터 5일까지는 인도네시아 전체 한인 선교사 대회가 열렸었습니다. 선한목자교회의 유기성 목사님을 모시고 사경회를 가졌었던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인도네시아 각 도처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역하시던 분들과 가까운 만남을 가지고서 사역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큰 위로와 도전이 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들을 통하여 동행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3. 깔리만딴 방문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한국의 모 교회에서 헌당식 관계로 담임목사님 포함 9명의 성도들이 깔리만딴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곳은 내년에 이동하게 될 본 사역지이기도 한 까닭에 저 역시 선 임 선교사인 송광옥 목사님을 따라 이번 헌당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한된 일정 가운데 11개 교회의 헌당식을 해야 했던 관계로 아침부터 새벽까지 23일을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해야 했지만, 자신들의 교회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새벽 3시에도 깨어 기다리고 있는 현지 성도님들을 마주하다보니 누구 하나도 피곤을 호소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차를 타고가다 오토바이로 갈아타고 그마저 갈 수가 없어 도보로 산을 넘어가서라도 저희가 헌당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누군가 한 사람이 저희보다 앞서서 그 험한 길을 찾아 들어가 피와 땀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지와 땀과 피로로 범벅이 된 일정이었지만 복음과 복음전도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 이 때가 새벽 3시 도착했을 때였던가? 1시 도착 교회였던가.... ㅡㅡ; 기억이 잘 나질 않네요. 빨강색 조끼 입은 분들 가운데 왼쪽에서 두 번째 위치한 분이 바로 한국나이 71세가 넘으신 분인데, 그 새벽에 산 봉우리 4-5개 넘어서는 강행군들을 한번도 주저함 없이 수행해내신 분이십니다 ^^;>

<시골은 특별행사 때 교회를 이렇게도 장식한답니다. 야자 이파리를 갈라서 휘장을 만들고, 거기에 종이꽃(붕아 끄르따스)과 예쁜 꽃들을 꽂아 최대한으로 자신들의 기쁨과 정성을 표현합니다. 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죠>
 

4. 스띠아 신학교 방문

제가 협력사역하게 될 교단인 G.K.S.I. 의 신학교들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자카르타에 위치한 스띠아 본교는 현지마을 주민들의 방화로 인하여 1500여명에 육박하는 학교 식구들이 3군데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고, 그 중 2곳은 임시건물에서 그리고 500여명의 학생들은 정부에서 제공한 난민촌에서 현재 1년 넘도록 텐트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학업환경이 극한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배워 복음전도하는 일에 생을 바치겠다는 의지로 꿋꿋이 버텨가고 있는 학생들의 현재모습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신학교를 문 닫으리라 생각했던 모처의 계획들은 오히려 의문상황에 다다를 지경이 되었으니 환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정말 오묘했습니다만 아무튼, 주의 긍휼 가운데 학교가 정상화 될 수 있는 길이 열려지기를 기도합니다.

<스띠아 자카르타 본교 중 일부인 약 500여명의 학생들이 1년째 이 곳에서 숙식하며 예배하고 공부하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입니다>

<난민촌 부지로 옮겨온 이후, 어떤 부류에서는 내심 학생들이 불편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 신학교를 떠나리라 기대했었다지만 이상하게도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는 대신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이 텐트생활을 했던 것을 떠올리기라도 한 것 마냥 열악한 환경에 동요됨 없이 학업을 계속하고 있고, 더욱이 이런 학교상황을 알면서도 이 학교에 입학하겠다고 지원하는 학생들이 벌써 수십명이 된다고 하니 놀랄 일이지요. 자카르타 스띠아 신학교 사건에 대해서는 다음넷 '스티아 신학교' 검색>

또한 제가 거주하게 될 깔리만딴 응아방 소재 스띠아 신학교 분교에서는 현재 100여명의 학부생과 50여명의 고등학생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비록 건물과 불안정한 전기문제, 교수충원 등 앞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기는 하지만 적도 아래 뙤약볕 가운데에서라도 복음의 힘에 감동되어 그 길을 걸어가겠노라 부르심을 입은 이들이 매진하고 있는 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부족한 가정이 그 곳에서 어떠한 부르심으로 주의 일에 참여하게 될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무쪼록 주님의 커다란 계획하심 속에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5. 가족 근황

그동안 주의 보내신 천사처럼 위로와 교제를 나누며 지내왔던 윤용호 목사님 가정이 본 사역지로 떠나고 나니 한편으로는 홀로 이 땅에 남겨지는 듯한 느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야 시작이구나 하는 기대감 역시 있습니다. 지금까지 돌봄을 받던 입장에서 이제는 누군가 새로 오게 될 이를 돌봐야 할 입장으로 전환되는 과정이 익숙하지만은 않지만, 부족하나마 은총 가운데 그러한 역할들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구합니다.
 

많은 관심과 기도 가운데 동재가 현지인 유치원인 ‘히둡바루(새 생명)’ 로 잘 적응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한 가지, 지금껏 함께 했던 윤용호 목사의 둘째 딸 다인이가 떠나 이제는 홀로 한 사람, 한국사람이 되었는데 2학기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조금 염려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활동이라고는 그림 색칠하기가 전부이다시피 하지만 이 기간들을 통하여 동재가 인도네시아 언어와 문화에 노출이 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6. 기도제목

기도제목은 오른 쪽 옆 <이 달의 기도>를 참조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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